다윗의 죄는 얼마나 무거울까?-2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저지른 다윗
사건을 덮으려는 시도가 두 번이나 실패하자, 다윗은 더더욱 똥줄이 탔다.
그는 더욱 교활하고 섬뜩한 짓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다윗은 우리야를 전쟁터로 다시 보냈다.
그러면서 우리야에게 편지를 한 통 전달한다.
바로 요압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희는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갔다가, 너희만 뒤로 물러나서 우리야가 적의 화살에 맞아 죽게 하여라.” 참 소름끼친다. 자기의 충직한 신하를 죽이라고 하는 내용의 편지를 당사자로 하여금 전달하게 한다니.
편지를 받은 요압은 편지 내용 그대로 실행했다.
우리야는 결국 전쟁터에서 전사했다.
아까 언급한 내용이지만, 2차 암몬 전쟁은 포위전이다.
포위하는 쪽이 안정적으로 식량 보급을 한다는 가정 하에 농성하는 쪽이 불리하다.
이렇게 성을 몇 날 며칠 몇 달, 몇 년을 포위하고 상대를 굶겨죽이거나(자급자족도 한계가 있다), 항복을 받아내거나 하는 전술은 당시 아주 보편적인 전술이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시리아가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포위하는 장면이 나온다.
계속된 포위에 식량이 바닥 난 사마리아에는 굶주림에 미쳐서 비둘기 똥이라도 먹으려고 돈 주고 거래하는 아귀 다툼 지옥도가 펼져지게 된다.
역대하 32장에 보면 앗수르도 남유다를 포위하여 말려 죽이려고 하는데, 남유다 왕 히스기야는 안정적인 식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성 밖에 있는 샘과 성 안에 있는 연못을 잇는 터널 공사를 하기도 했다.
2차 암몬 전쟁도 같은 상황이다.
포위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절대로 유리하다.
굳이 적의 공격이 거센 성벽 가까이 갈 필요가 없다.
오랜 군생활로 잔뼈가 굵은 다윗과 요압은 이를 잘 알았고, 이용했다.
요압은 우리야와 이스라엘 군에게 랍바 성벽 가까이 가서 싸울 것을 명령했다.
물론 성벽 가까이 가면 적의 화살과 뜨거운 기름과 불, 돌덩이들이 날아올 것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 군은 진영을 잘 짜서 방패를 빈틈 없이 들고는 전진했을 것이다.
이때, 요압이 신호를 주었을 것이다.
요압의 신호를 받은 병사들은 우리야의 뒤로 물러나 진영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빽빽한 방패벽도 무너져 틈이 생겼으리라.
무너진 방패 사이로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으리라.
우기는 아직 멀었는데, 장대비가 쏟아졌으리라.
우리야는 온몸에 화살을 맞고 절명했을 것이다.
‘어쩌다가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무기들이 버려져서 쓸모 없이 되었는가(사무엘하 1:27)?’ 철천지 원수 사울 왕이 죽자, 슬픔의 표시로 옷을 찢으며 조가까지 지어 애도했던 다윗이었다.
그런 그가 죽기 직전까지 한 점도 주군을 의심하지 않았던 우리야가 죽었을 때는 조가는 커녕 자기 죄를 덮느라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정말 추한 모습이다. 슬픈 점은 아직 추한 것이 더 남았다...
우리야의 전사 이후 요압은 전령을 보내 현 상황을 다윗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다윗은 화를 내며 요압을 호되게 질책했다. 아니, 질책하는 척 했다.
“너희가 왜 그토록 성에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적의 성벽 위에서 적병들이 활을 쏠 줄도 몰랐단 말이냐?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을 누가 쳐서 죽였느냐?
어떤 여자가 성벽 위에서 그의 머리 위로 맷돌 위짝을 던져서, 아비멜렉이 죽지 않았느냐?” 요압은 다윗이 어떻게 화를 내며 어떻게 질책할지 알고 있었다.
다윗과 요압이 서로 입을 맞췄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전령에게 예상 답변까지 알려주고는 보낸 것이다.
전령은 이렇게 전한다.
“우리의 적은 우리보다 강하였습니다.
적이 우리와 싸우려고 평지로 나왔으므로, 우리는 적들을 성 안으로 밀어넣으력, 성문 가까이까지 적들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때에 성벽 위에 있는 적들이 임금님의 부하들에게 활을 쏘았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부하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죽었고, 임금님의 부하인 헷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다윗은 전령에게 말한다.
“너는 요압에게 이렇게 전해라. 칼은 이 편도 죽이고 저 편도 죽이기 마련이니 이번 일로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여라.
오히려 그 성을 계속 맹렬히 공격하여서 무너뜨리라고 전하여 요압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배제 당한 여성의 삶
한편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밧세바는 자기 남편을 생각하여 슬피 울었다.
애도하는 기간이 지나자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았다.
사건의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다윗은 사망한 충신의 아내를 거두어준 책임감 있는 성왕으로 보인다.
밧세바를 재빨리 아내로 삼은 다윗은 이제 완전 범죄를 이루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눈을 속이지 못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윗은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첫째 아이를 잃었다.
그리고 다윗의 가문에는 피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밧세바의 할아버지인 아히도벨은 다윗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다윗 왕 말년에 아히도벨은 압살롬 왕자와 함께 반란에 가담하여 다윗을 대적했다.
권력자에게 모욕을 당하고, 결국 남편까지 잃고 가해자와 강제로 결혼하게 된 여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지체 높은 왕비가 되었다한들 그게 밧세바에게 무슨 행복이겠는가?
그녀의 둘째 아들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이 그녀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까?
현재 우리로선 알 수 없다.
밧세바라는 한 여성의 삶은 철저히 그림자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