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큰 구원의 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2022.4.10. 요한복음 12장12~19절 배경
요한복음 12장 초반에 베다니에서 나사로가 베푼 잔치가 있었다.
그때 그곳에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베다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나드 향유를 부어드린 사건이 있었다.
본문관찰
호산나! 구원하소서! : 12~13절
예수님이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시자,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어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놓았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는 광경은 저저번주 말씀 레위기 23:39-43절 / 요한복음 7:37-38절에 나오는 초막절 축제를 연상하게 한다.
요한복음 7장37절에는 ‘명절의 가장 중요한 날’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히브리어로 ‘호산나 라바’라고 한다.
‘호산’ : 구원
‘나’ : 기도의 표현 중 하나로 보인다.
‘라바’ : 큰. 굉장히 큰.
종합해보면 ‘큰 구원’, ‘크게 구원하소서’이다. 이 날은 큰 구원의 날인 것이다.
오아시스가 있는 곳에 무성하게 자라는 종려나무 가지와, 풍성히 물을 공급받아 잎이 무성한 가지와, 한시도 물이 없으면 말라 죽어버리는 갯버들 가지가 휘날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와 환호성으로 가득찬 이 초막절 축제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펼쳐진 것이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감동에 사로잡혀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찬양했다.
아르바 미님
초막절에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은 행동을 했는데, 첫번째, 감사의 희생제물을 바쳤다.
두번째, 그 옛날 조상들이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 거할 때 초막을 지었던 것처럼 초막을 지었다.
세번째, 네 가지 식물, 곧 '아르바 미님'을 흔들었다.
아르바 미님의 첫번째 식물은 시트론 나무에 열리는 노란색의 열매다. '에트로그'라고 부른다.
이 열매는 익기 전에는 라임처럼 녹색이었다가 익으면 레몬과 같이 노란색으로 바뀐다. 외형은 레몬과 비슷하게 생겼고 성인 주먹만한 크기다.
두번째 식물은 종려나무 가지이다. 종려나무 가지는 대추야자 나무의 가지를 가리킨다. '룰라브'라고 부른다.
셋째, 무성한 나무의 가지다. 이는 도금양 나무를 가리키는데,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에스더의 본명인 '하닷사'가 바로 도금양 나무를 뜻한다. '하다스'라고 부른다.
고대 중동에서 신부는 결혼할 때 머리에 이 도금양 나무를 화관으로 만들어 썼다.
그 이유는 도금양 나무가 무성하게 잎을 맺는 습성 때문이다.
아이를 많이 낳는 다산을 풍요의 축복으로 여기는 당시 사람들에게 도금양은 다산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넷째, 갯버들 가지다. 물이 풍성한 곳에 사는 갯버들은 한시도 물이 없으면 말라 죽어버린다. '아라바'라고 부른다 하나님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유대인들의 고백이 묻어있다.
아르바 미님은 미드라쉬에서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이 네 식물은 네 종류의 유대인을 가리킨다.
맛도 있고 향도 있는 에트로그는, 율법을 배우고는 그 율법대로 실천하는 유대인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맛은 있으나 향은 없는 룰라브는 율법을 배웠으나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 유대인은 가리킨다고 보았다.
맛은 없지만 향이 있는 하다스는 율법을 배우지도 않았지만 율법에 따라 실천하고 있는 유대인을 가리킨다고 보았으며, 맛도 없고 향도 없는 아라바는 율법도 모르고 그대로 실천도 하지 않는 유대인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예언이 이루어짐 : 14~16절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요한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했다.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스가랴서 9:9).” 말은 압도적인 힘과 속도, 길들이기 쉬운 습성을 지녀 옛부터 전쟁 무기로 사용했다.
즉, 말은 전쟁을 상징하며, 왕이 행차할 때는 반드시 말을 타고다녔다.
하지만, 나귀는 그 반대이다. 나귀는 느리지만 인내심이 강하고 지구력이 좋아 주로 짐을 싣는데 사용했다.
즉 나귀는 평화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소유한 만물의 주이시지만 자기 소유의 나귀 한 마리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나귀를 빌려 타셨다.
예수님은 모든 왕 중의 왕이시지만 말이 아닌 나귀를 타고 오셨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의 의전에 사용하는 세단이나 방탄SUV, 또는 전쟁 무기 퍼레이드에 사용하는 탱크나 군용차량을 타지 않고, 다마스나, 포터 트럭을 타는 것과 같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예언을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뒤에야 스가랴서 예언이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증거 : 17~18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 시체 썩는 내가 진동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다.
그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이 기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원자 메시아로 영접하고 호산나 찬양을 드렸던 것이다.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 : 19절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부활의 증거인 나사로까지 죽이려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되자, 이렇게 푸념한다.
“이제 다 틀렸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
결론
첫째,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를 믿고 따르자.
성경 곳곳의 구절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둘째, 우리는 먼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대적해서는 안 된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적했지만, 결국 구원의 문이 열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