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자야 2023. 4. 25. 03:15

얼굴 2013.6.28

 

얼마 전에 이순신 장군의 실제 초상화가 발견되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이순신 장군 밑에 있던 승병이 그린 것이라고 하니 더욱 신뢰가 갔다.

"오오...그분의 얼굴!! 궁금해궁금해궁금해."

완전x10000000000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클릭했는데 좀 실망했다.

그림이 많이 훼손(당시 실린 책의 인쇄상태가 안 좋은건가)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겨우 얼굴의 윤곽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마 그림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선한 인상을 가진 할아버지의 모습, 무관이 입는 구군복이 아닌 네모난 흉배가 달린 펑퍼짐한 문관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희미하지만 평소 보고 싶었던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순신 장군은 군인으로서, 지휘자로서 두말할 것 없는 실력을 갖춤과 동시에 인품도 대단했다.

그는 10살에 병사가 되었다는 15살짜리 왜군 포로를 안타깝게 여겨 간간히 조선말과 학문(ex : 명심보감의 '효행'편)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를 본 명나라 사신 운덕은

"저 두 사람은 조선 장수와 왜군 포로가 아닌 한 아버지와 아들로 보였으니 그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는가?"

라며 이순신 장군의 성품을 칭찬했다.

이런 분이니 어찌 안 보고 싶은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얼굴보다 중요한게 있다.

바로 마음이다. 그의 성품이다.

내가 이렇게 특정인물의 얼굴을 보고 싶은 이유도 얼굴이 잘 생겼는지 아닌지가 아닌 그의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 받았기 때문이다.

얼굴이 이순신 장군같더라도 성품이 이순신 장군이 아니면 진짜 이순신 장군이 아닌 것이다.

<증정 중등조선역사>(1946)에 실린 이순신 장군 초상화(서울교육박물관 소장

 

예수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이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가리킨다.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외모가 아닌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다.

외모적으로 예수님 닮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연쇄살인마 찰스 맨슨도 예수님을 닮았다.

이마에 새긴 하켄크로이츠 문신만 빼면 그의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은 영화나 명화에서 나오는 예수님같다.

그러나 그는 마약중독자에 난잡한 생활을 했던 사람이고, 수십명을 살해한 살인범이다.

이렇든 외모보다 성품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신다.

 

살인마 찰스 맨슨.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예수님 이미지가 그의 얼굴에 있다.

임진왜란의 선발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의 깃발에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고니시를 비롯한 많은 수의 왜군이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깃발에 그려진 십자가...얼핏 보면 '십자가 군병'. '크루세이더'이다.

하지만 그들은 조선에 침입하여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도륙하고 차마 글에 담을 수 없을 악들을 자행했다.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상적인 야망과 욕심이 불러온 '악'이다.

고니시 부대는 외형적으로는 십자가를 내건 십자가 군병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잔인함이 가득했다.

일본군의 침입으로 서울 길거리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여기저기 흩어져 떼를 이루었으며, 산 자들은 솔잎과 나무뿌리로 목숨을 겨우 연명해 나갔고, 어린이들은 죽어 있는 엄마의 젖을 빨며 방황했다.

술 취하고 배불리 먹은 명나라 군사가 노상에서 구토하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어 다투어 주워먹고, 약한 자들은 그것도 못 얻어서 호곡하였다.[민경배 저 한국기독교회사 인용]

전장에서 성직자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고해성사나 예배를 하기도 하는 등 고니시 부대는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그들의 행실에서 나타남과 같이 속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었다면 조선을 침략하라는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을까?

우리도 그렇다.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며 교회에 다니는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속으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경우가 많다.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은 채 다니는 '겉만 그리스도인'들은 결국 그들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된다.

내 안에 속사람을 변화시키려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겉모습이 아닌 속사람, 즉 성품에 집중해야 한다.

많은 화가들이 예수님의 겉모습에 집중했다.

겉모습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예수님의 겉모습을 미화하게 되었다.

서성록 교수님의 칼럼을 보면 시대에 따른 예수님의 '스타일'을 다룬 구절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비잔틴이나 르네상스 시대엔 '미소년',

중세 미술에서는 '귀족',

반종교개혁시대 때는 '영웅'

렘브란트만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그렸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렘브란트의 '엠마오에서의 식사' 판화 1654

 

물론 마음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당장 보이는 것이 외모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 대해 기록한 제자들 중 아무도 예수님의 외모를 언급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말씀과 성품 등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온 것에 집중했다.

에효 나부터 잘해야지...ㅠㅠ

군대있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말은 쉬운데 삶 속에서 예배드리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거 같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 119: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