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1장에 나오는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이야기를 화폭에 그려냈던 대부분의 화가들은 밧세바를 ‘왕을 유혹하여 권력을 얻어낸 요부’, 팜므파탈로 그린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는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태해진 다윗
때는 다윗이 왕이 된 이후 암몬 족속과 전쟁할 때였다.
그런데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는데도 다윗은 출전하지 않았다.
여기서 ‘왕들이 출전할 때’란, 전쟁하기 좋은 계절이란 말이다.
즉 비가 자주 내려서 추웠던 우기가 지나가고 따뜻한 건기가 시작된 것이다.
멀리 원정을 나가 야전에서 먹고 자고 하기가 괜찮다는 것이다.
직업 특성상 노숙에 익숙한 양 치는 목자들도 우기 때는 춥기 때문에 노숙하려하지 않는다(예수님 탄생도 건기 때 사건이고, 건기에 노숙하던 목자들이 제일 먼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전쟁에 계절이 그렇게 많은 영향을 끼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계절 때문에 전쟁의 승패가 갈리고 나라의 운명이 바뀌기까지 한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이는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번 암몬과의 1차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승기를 잡았으나 우기가 되면서 이스라엘은 군대를 물리고 건기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출처: 호크마 주석).
그래서 이스라엘은 건기, 곧 봄이 오는 날에 암몬과 2차 전쟁을 벌이게 된다. 2차전은 1차전보다는 난이도가 낮았다.
1차전에서 암몬은 주변 국가들과 연합하여 이스라엘 군을 샌드위치처럼 포위했었지만, 2차전은 연합군도 없고, 반대로 이스라엘이 암몬 족속의 랍바 성을 포위한 상황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랍바 성으로 들어가는 식수와 식량이 다니는 길도 끊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상대가 쫄쫄 굶다가 항복할 때까지 죽 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출전하지 않고 요압 장군에게 병사들을 맡겨(’짬 때린다’는 표현이 생각난다)전쟁에 내보내고, 자신은 수도 예루살렘에 머물러있었다.
이는 다윗이 나태해졌다는 것을 드러낸다.
원래 다윗은 왕이기 앞서 군인이었으며, 야전 사령관이었다. 전투의 선봉에 서서 악마를 굴복시키시고 죽음의 권세를 되찾아오신 대장 예수의 예표답게 다윗은 전투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밧세바 사건 한참 뒤에 사건이지만, 다윗의 평소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 있다.
사무엘하 21장 15절에 나오는 사건으로, 한 번은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병사 이스비브놉과 싸우다가 죽을 뻔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다윗의 신하들이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등불이신 임금님, 이제는 저희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지 마옵소서… 등불이 꺼질까 두렵습니다. 제발 옥체를 보존하소서!” 라며 말릴 정도였다.
위력에 의한 범죄를 저지른 다윗
그렇게 예루살렘에 짱 박힌 다윗은 낮잠을 늘어지게 때리고는 저녁에 일어났다.
그는 심심했는지 궁전 옥상을 거닐었다.
그러다 한 여성이 집 옥상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다윗은 지대가 높은 예루살렘 성에서, 그것도 궁전 옥상 위에 있었으니 일반 민가 옥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여성은 율법에 따라 정결예식을 위해 몸을 씻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리 옥상이라도 밝은 대낮에 목욕은 위험하니 해가 떨어져 어둑한 저녁에 목욕을 한 건데, 그걸 매의 눈을 한 다윗이 본 것이다.
그녀가 목욕을 한 이유는 생리가 끝날 때(생리 후 7일째에)정결예식을 하라는 율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레위기 15:19-24).
다윗은 이때 나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신하를 보내 목욕하던 여성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했다.
알아보니, 그녀는 다윗의 충직한 부하인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였다.
게다가 밧세바는 다윗 왕의 책사(고문)인 아히도벨의 손녀였다.
우리야와 밧세바 사이에는 아직 자녀가 없었다.
다윗은 즉시 행동했다. 죄를 짓기 위해 즉시 행동했다.
정상적으로 생각했다면 보지 않고 눈을 돌렸을 것이며,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리 요셉처럼 아예 유혹의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욕정에 휘둘리고, 권력에 취했다.
나태함은 죄를 짓게 한다.
다윗은 왕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도 왕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밧세바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왕명을 거역하는 것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얼마나 큰 무력감과 공포 속에 있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다윗이 저지른 죄는 이렇게 조용히 묻히는 듯 했다.
얼마 뒤, 밧세바가 임신했다. 밧세바는 사람을 보내 이 일을 다윗에게 알렸다.
남편 우리야는 쭉 전쟁터에 나가있으니 밧세바의 배 속 아이의 친부는 다윗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기 죄를 사실대로 고백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죄를 덮기 위해 다른 죄를 계획하고 행했다.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있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따로 불렀다.
다윗이 우리야를 불러 자기 잘못을 사실대로 얘기하고 사과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그저 알리바이를 위해 우리야를 부른 것이다.
다윗은 시치미를 뚝 떼고 우리야에게 2차 암몬 전쟁의 상황을 묻고, 요압 장군과 병사들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그리고는,
“이제 그대의 집으로 내려가서 목욕을 하고 쉬어라.” 라고 했다.
다윗은 우리야에게 말하면서 이런 걸 기대했을 것이다.
‘먼지투성이가 된 발도 씻고, 땀 투성이 몸도 개운하게 씻고나서 내가 하사한 음식을 먹고 배부르면 마음도 좀 놓이겠다, 오랫동안 떨어져있었던 아내 밧세바와 잠자리도 하겠지? 그럼 나중에 밧세바가 낳을 그 아이는 공식적으로 내 아이가 아닌 우리야의 아이가 될 거다.’ 이러한 다윗의 계획은 빗나갔다.
우리야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함께 온 병사들과 함께 궁궐 문간에 누워잤다.
그가 그렇게 한 첫번째 이유는 언약궤가 전쟁터에 나가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전쟁터에 나가있다는 말은 곧 하나님이 함께 참전하신 전쟁이라는 말이다.
율법에 의하면 남자가 설정하면 여성이 생리한 것과 같이 부정한 상태가 된다.
우리야는 자신이 아내와 잠자리를 하여 하나님이 참전하신 전쟁에 누를 끼칠 것을 염려한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자기의 상관들과 자기 부하들, 그리고 왕의 신하들이 모두 전쟁터에서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만 집에서 편하게 쉬기가 죄송하다는 것이다.
전우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한 것이다.
똥줄이 탄 다윗은 이번에는 우리야에게 술을 마구 권하여 취하게 했다.
우리야가 술김에 집으로 들어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우리야는 이번에도 귀가하지 않고 궁궐 문간에서 잤다.
우리야의 모습에서 밤중에 양떼를 지키기 위해 들에서 잠을 청하는 목자가 보인다.
목자 출신인 누구와는 달리 우리야는 신앙인으로서, 군인으로서, 리더로서 모범을 보인 것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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