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이후 넷째 주다.
2022.4.17. 요한복음 20장 1~18절
배경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대해 비교적 시간 순서대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때는 주간의 첫날이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주일’로 지키는 일요일 이른 아침 아직 해도 다 뜨지 않은 때였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부자의 무덤에 묻히셨다.
무덤은 바위를 깎아낸 인공 동굴이었는데, 그곳 땅은 비교적 무른 성질의 석회암이 대부분이어서 깎아내기 쉬웠다.
유대인들은 석회바위를 깎아서 무덤이나 마굿간, 창고 등을 지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 마굿간도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다.
본문관찰
빈 무덤 : 1~2절
막달라 출신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빙의되어 고통받던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를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주셨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에 혼자 가지 않았다.
다른 여제자들과 함께 갔다(마태복음 28:1 / 마가복음 16:1 / 누가복음 24:1-10).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온 것이다(누가복음 23:56 / 누가복음 24:1).
그런데 무덤을 막고 있던 돌문이 치워져 있었다.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엔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본문에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라고 표현함)에게 달려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가져갔는데 어디로 가져갔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요한의 디테일한 증언 : 3~7절
여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바로 달려나가서 단숨에 무덤으로 왔다.
요한은 이 상황을 굉장히 생생하고 디테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요한이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서 먼저 무덤에 도착했다.
요한은 무덤에 들어가지는 않고 몸을 굽혀 예수님의 시신이 눕혔던 곳을 보았다.
그곳에 시신은 없고 시신을 감쌌던 삼베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가 무덤에 도착해서 베드로는 아예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그 삼베와 같이 놓여 있지 않고 한 곳에 따로 개켜져 있었다.
부활의 증거 : 8~10절
이와 같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음을 확인하였다.
여자들도 확인하였고 베드로와 요한도 확인하였다.
빈 무덤은 그의 몸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었다.
예수께서 기절하셨다가 다시 살아나실 가능성은 없었다.
사형을 집행하던 군인들은 그의 죽음을 확인했고 또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흘렀고 그의 제자들은 그를 장사 지냈기 때문이다.
또 설사 그렇게 회생(回生)하셨다 하더라도 죽다 살아난 자가 무덤을 막았던 무거운 돌을 밀어 제치고 군사들의 경비(마 27:62-66)를 물리치고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 그의 제자들이 그의 시신을 도적질할 가능성도 없었다.
그 무덤문은 큰돌로 막혀 있었고 군사들의 경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시신을 훔쳐 숨겨두고 그가 부활했다고 거짓말하며 그 거짓말을 위해 핍박을 받고 순교까지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의 원수들이 그의 시신을 도적질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은 그의 몸의 부활 외에 다른 무엇으로도 설명되기 어렵다(옛신앙 : 요한복음 강해에서 발췌).
그러나 제자들은 빈 무덤을 보고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슬픔에 눈이 가리워 : 11~16절
베드로와 요한은 집으로 돌아갔고, 다른 여제자들도 집으로 돌아간 것 같다.
막달라 마리아만 남아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도 마음이 아픈데,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까지 도굴해가버려서 향품을 바르는 등 제대로 장례를 치러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더더욱 슬펐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했던 시간이 눈 앞에 나타나듯 생각나서 일 수도 있다.
그때 천사들과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이하 ‘마리아’)에게 나타났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물었다.
“아가씨, 왜 우십니까?”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대답하며 뒤로 돌아섰을 때 예수님이 거기 계셨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동산지기(동산 및 무덤 관리인)로 오해했다.
슬픔에 마음이 가리고, 눈물이 앞을 가려서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 내게 말해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셨다.
그제서야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나를 만지지 말아라 : 17~18절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안녕하세요.” 정도로 간단하게 인사하고 지나는 법이 없다.
유대인들은 지인을 보면 서로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서로의 가슴 위에 오른손을 올리고 입술을 맞췄다.
그리고 서로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잡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길게 인사를 나누고는 서로 갈 길 가는 게 아니다.
서로 간 안부를 물으며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풍습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두 명씩 짝지어서 전도 보내실때 인사하다가 전도에 방해될까봐 “가는 길에 누굴 만나더라도 인사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누가복음 10: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마리아가 반가우셨을 것이다.
사랑하는 제자 마리아와 몇시간이고 기쁨의 대화를 나누고 싶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할 일이 많으셨다.
부활의 첫 열매로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증거하셔야하고, 낙담한 제자들을 다독이시고, 수많은 증인들 앞에서 승천하셔야 했다.
특히 이 기쁜 소식을 신속히 전해야한다는 사명감에 한시도 지체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다.
'성경,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의 장례를 준비한 마리아 (0) | 2023.04.30 |
---|---|
절망적 상황에 울려퍼진 "샬롬!" (0) | 2023.04.30 |
다윗의 죄는 얼마나 무거울까?-2 (0) | 2023.04.29 |
다윗의 죄는 얼마나 무거울까?-1 (0) | 2023.04.29 |
하나님의 성품 (2) | 2023.04.25 |